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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정 프로젝트 전시 <네오를 찾아서>_20241005-20241019

이미정 프로젝트전 <네오를 찾아서>_

기획 : 이미정, 참여작가 : 이미정, 이다다, 사운드 : 구동현 /

공동기획 : 피그헤드랩 / 사진협조 : 이규환

2024년 10월 5일부터 10월 19일까지 / 운영시간 : 12:00-20:00 / 유인 혹은 무인 운영

​오프닝 리셉션 : 10월 5일 오후 5시 / 피그헤드랩

전시를 보며 남기는 메모 

​이 전시를 소개하는 것은 그렇게 쉽지 않다. 쉽지 않다의 종류는 다양하겠지만 이 전시는 기본적으로 한 명의 개인이 던진 주제어에 두 사람이 힘을 더했고, 이것의 결과가 나오기까지 과정은 주사위를 던져 무엇이 나올지 기다리는 기분이었다. 안정적인 기획이라는 관점에서 봤을 때는 사실 매끄러운 전시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이 전시는 그 던져진 주사위가 꽤 나쁘지 않은 수로 나왔고 나 역시도 이를 하나로 엮으려는 노력을 통해 어떤 생각의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아래는 그런 생각들을 정리해본 것이다.

 

영화 매트릭스의 주인공 네오는 영화 상 두 개의 채널을 통해 세상을 본다. 매트릭스에 의해 프로그래밍 된 가상의 세계와 그곳에서 벗어나 인간 배터리로 존재하였던 실제의 세계를 구분하기 시작하며 모험을 펼친다. 매트릭스를 관람하는 관객은 세 개의 채널을 통해 세상을 본다. 네오가 보는 두 개의 채널과 덧붙여 ‘영화 매트릭스’라는 매체 그 자체의 채널까지 더해지는 것이다. 이는 완전히 새로운 견해는 아닌데, 매트릭스 시리즈 중 제 4의 벽을 언급하는 내용들이 간간이 나오는 것을 생각해보면, 애초 매트릭스라는 영화 자체가 ‘가상의, 가상의, 가상의’ 세계에 대한 메타포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서 네오라는 존재는 프로그램이 만들어놓은 가상의 세계의 NPC인가, 영화 상 실제의 세계에서 모험자인가, 혹은 스크린으로만 존재하는 가상의 캐릭터일 뿐인가? 어떻게 결정하던 네오는 각 채널마다 각자의 방식으로 존재하고 있으며 우리에게 그 채널의 존재를 전달하고 있다. 네오가 있기에 우리는 매트릭스의 세계, 매트릭스 바깥의 세계, 그리고 그 두 개의 세계가 충돌하는 영화 상의 세계를 모두 인지하고 상상할 수 있게 된다. 즉 네오라는 것은 그 개체를 받아들이고 해석하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도록 만드는 일종의 키워드이자 매체, 그리고 다시 한번 그 목적의 전체가 되는 것이다.

 

이 전시에서 네오는, 표면상으로는 이미정 작가가 선물을 받은 로봇 물고기이다. 이번 전시에서 사운드를 담당한 구동현이 과거 선물해준 것인데, 받고 나서 한동안 잊어버렸다가 훗날 냉장고 위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거기서 본 전시가 시작된 것이다.

먼저 이미정 작가는 거기서 네오의 존재를 자신과 동일화시켰다. 그것은 예술가들이 종종 느끼곤 하는 일종의 딜레마같은 것인데 멈춤, 쓰이지 않는 상태, 원래 있어야 할 곳에서 벗어남 등의 감정들이었다. 이러한 감정을 바탕으로 작가는 일종의 도피라는 단어를 연결하였고 자신이 취미처럼 여기는 술 빗기를 전시로 꺼내놓았다.

또한 작가는 이다다 작가와 구동현을 섭외하였다. 이다다 작가는 네오의 이야기를 듣고, 네오가 관조자가 되어 관찰하는 세계를 구현하였는데, 이 안에서 네오는 어떤 세계를 탐험하고 관찰하며 떠다닌다. 이것이 3개의 평면 작품으로 전시에 등장하였다. 여기에 등장하는 네오는 이미정 작가가 가지고 있는 장난감 네오가 아닌, 기계로 된 형태의 로봇 물고기와 비슷하다. 로봇물고기 네오는 픽셀 이미지로 재현된 듯한 세계, 고대의 폐허나 산업현장과도 같은 나름의 상상의 세계를 탐험하고 관조한다.

또한 구동현의 경우, 작가에게 구두로 감정들과 상항들을 전달받고 이것을 바탕으로 음악을 제작해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이때 작가는 구동현에게 “중경삼림”을 언급하는데, 정작 구동현은 이 영화를 본 적이 없다. 유튜브 등을 통한 짧은 하이라이트 감상과 이미정 작가에게 전달받은 단어들을 조합하여 어떤 사운드가 완성이 되었는데, 그것은 발랄하면서도 뭔가 불안하고 또 심해의 잠수정이 내는 효과음이나 고래나 내는 어떤 고주파음을 연상하는 울림과도 같은 음악이다.

재미있게도 이미정에게서 탄생한 네오는 이다다의 세계로 전달되며, 이다다가 창조한 어떤 폐허나 몰락하는 세계 안에 자리를 잡는 것이다. 구동현에게 전달된 네오는 전혀 본적이 없는 중경삼립이라는 영화의 느낌을 만들어내는 매개체가 된다. 이 것들은 거대한 플롯을 통해 계획되고 재단하듯 나온 작업이 아니다. 네오라는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존재가 전달(혹은 전이)되며, 또 파생되듯 펼쳐진 각자의 이야기들이다. 이 세 사람의 세계는 전혀 교집합이 없으며 각자가 상상하는 나름의 엔딩으로 향하는 갈래길들이다. 이 매개체가 네오라는 어떤 존재로 인한 것이라는 것이 이 이야기의 묘미일 것이다.

냉장고 위에서 발견된 순간 네오라는 이름이 붙여진 플라스틱 무기질은 세 사람의 상상력과 다시 전시로 묶임이라는 과정을 통해 이제는 관객의 머릿속으로 들어간다. 앞서 매트릭스의 이야기를 거창하게 한 이유는 이것이다. 현실의, 가상의, 가상의, 현실의, 다시 가상으로 넘어가는 이 과정들은 다중 채널의 과정에서 분명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네오는 이제는 관객의 세계에서 어떤 존재로서 나름의 여정을 펼쳐나갈 것이다.

네오는 무엇인가? 네오는 어디에 존재하는 것일까? 이것에 대한 답을 명확히 할 수는 없지만 동시에 우리 모두는 각자 마음 한 구석에 나름의 장면들을 떠올리고 있을 것이다. 그것은 더 이상 장난감이 아닌 살아있는 물고기일 수도, 혹은 물고기의 형태가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심지어 글자로만 존재할 수도 있다. 네오를 통해서 네오를 생각해보는 과정은, 이윽고 각자가 네오라는 무엇인가를 상상하는 재탄생의 과정이라 소개해볼 수 있겠다.

마지막으로 네오는, 다시 이번 전시 내 이미정에게로 돌아가 창작의 세계에 대해 묻는다. 그것은 오프닝 세레모니에서 꺼낸, 그가 빚은 술에서 어떤 세계로 재탄생하는 것이다. 작가에게 술 빚기란, 처음 논의 과정에서는 창작에서 벗어나는 어떤 도피행위처럼 소개가 되었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달랐다. 그것이야말로 또 다른 창작의 한 일환이며 동시에 법적으로 성인이 되었기에 가능한 창작이기도 하다. 네오는 어린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플라스틱 장난감이 아닌, 성인이 된 작가를 통해 좋아하는 과일로 담근 술이 되어 관객들에게 다시 전달되는 것이다. 오프닝 세레머니에서 그 술을 마시며, 어릴 때 잡던 붓에서 시작한 창작이 성인이 되어 알콜을 통해 발현되는 것은 아닐까 우스개 소리를 해보았다. 술잔 안에서 네오는 또 유유히 헤엄을 치고 있으리라. 그렇게 반복되는 상상의 나래들이다.

​■ 피그헤드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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